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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

mediaa 2022. 6.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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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옷소매붉은끝동

1.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이야기

옷소매 붉은 끝동은 강미강 님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의빈 성씨 덕임의 인생과 조선 제22대 임금이었던 정조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적통 원손으로 태어나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정도로 똑똑하고 오만했던 이산, 그런 모습에 동궁의 나인들은 다른 어떤 상궁들 보다도 그를 보는 것을 두려워했다. 남한테 엄격한 것을 물론이고 자신에게는 그 이상으로 철저했다. 사랑하는 여인보다 일국의 운명이 우선이고, 백성들의 안위가 먼저였기 때문에 첫사랑조차 차가운 이성으로 누르며 늘 완벽함을 유지한 채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완벽함은 궁녀 덕임을 만나며 완전히 깨진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었던 덕임은 맹랑하며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끝까지 평범한 삶을 살기 원했기 때문에 왕의 사랑을 몇 차례나 거부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살며 꿈을 이루고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궁녀로 남고자 했던 것인데 그녀는 끝내 왕을 마음에 담게 된다.

 

2. 정조와 의빈 성씨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

정조와 의빈 성씨의 이야기는 실제로도 굉장히 유명하다. 정조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의빈 성씨, 이 둘의 이야기는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다.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 홍 씨가 덕임을 총애하여 곁에 두면서부터 둘의 연이 시작되었고 정조는 그 시절부터 의빈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의빈은 태도가 단정하고 총명할 뿐만 아니라 재능, 기술, 예술까지 갖춘 여인이었다고 하며, 권력욕에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1766년 15살이 된 정조는 세손빈 김 씨와 합 혼례를 올리고 공식 후궁을 둘 수 있게 되자 의빈에게 후궁이 되어달라 한다. 그러나 의빈은 울면서 세손빈이 아직 아이를 낳고 기르지 못하여 감히 승은을 받을 수 없다며 목숨을 걸고 승은을 거절한다. 이때는 정조가 의빈의 깊은 뜻을 이해하여 납득하고 물러난다.

 

시간이 흘러 정조가 조선 제22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30세까지도 아내인 효의왕후가 후사를 낳지 못하자 신하들이 후궁을 간택하자고 재촉한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정조는 화빈 윤 씨를 후궁으로 들이게 되고, 이때 의빈에게도 또 한 번 승은을 내린다. 하지만 의빈은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승은을 거절한다. 그러자 정조는 의빈의 하인을 꾸짖고 벌을 내렸고 그제야 의빈은 승은을 받았다고 한다. 승은을 받자마자 의빈은 바로 임신했으나 1780~81년 사이에 두 번이나 유산을 했고, 1782년 마침내 문효세자를 낳았다. 의빈은 문효세자가 원자로 정해지고 나서 1783년에 정 1품 빈으로 품계가 올랐다. 그리고 다음 해인 1784년 3월 옹주까지 낳게 되고 정조는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옹주가 병을 얻어 겨우 두 달 만에 요절하고, 문효세자 마저 1786년에 홍역으로 요절한다. 이 당시 의빈은 임신을 한 상태였는데 마음이 여리고 약했던 의빈은 자식들을 잃자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건강이 악화된다. 피접을 나갔다 오고 잠시 나아진 듯 보였으나 결국 의빈은 1786년 9월 14일에 창덕궁에서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사망한다.

 

3. 의빈 성씨가 사망한 이후의 정조

정조는 의빈이 사망한 후 3년 동안 어제의빈묘지명, 어제의빈묘표, 어제의빈치제제문, 어제의빈삼년내각제축문, 어제의빈삼년후각제축문을 썼다. 후에 수빈 박 씨가 들어오고 순조가 생기자 의빈의 무덤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기도 하고, 순조가 태어나기 직전에는 문효세자와 의빈의 무덤에서 밤을 새웠다고도 한다. 순조가 태어나면서 더 이상 의빈 무덤에 갈 수 없게 되었지만 본인이 죽기 전까지 신하들을 통해 의빈의 제삿날마다 글을 보냈다.

 

'살아 있는 나와 죽은 네가 끝없이 오랜 세월 동안 영원히 이별하니 나는 못 견딜 정도로 근심과 걱정이 많다.', '빈과 즐겁게 노닐었는데 적막하고 고요해졌다.' 이것은 어제의빈삼년내각제축문의 일부분이다. 이렇듯 남긴 글들에는 죽은 의빈 성씨에 대한 정조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다. 정조의 여인들 가운데 어제비를 받은 것은 의빈 성씨가 유일하며, 조선에서 배우자를 위해 묘지에 문장을 짓거나 글씨를 쓰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 글들은 약 2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남아 의빈을 향한 정조의 사랑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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